국가의 백년지대계는 우리가 결정하자 - 정지창(전 영남대 교수)
작성자 최고관리자

언제부턴가 빛바랜 상투어가 돼버린 구호들이 있다. 이를테면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같은 말이다. 교육은 앞으로 나라의 장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문제이니 백 년 후를 내다보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뜻인데 요즘의 교육정책은 백년은 고사하고 당장 10년 후도 대비하기 힘들만큼 단기적인 땜질 처방에 머물고 있다. 단순한 인구통계만 보면, 10, 20년 후의 각급학교 취학 학생 수와 입학정원이 얼마나 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터인데, 정치인들의 압력과 학원재벌의 로비에 따라 대학을 증설해주고 입학정원을 늘려주었다가 이제는 눈앞에 닥친 인구절벽 앞에서 입학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2001년 당시의 한완상 교육부장관이 스칸디나비아의 무슨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와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유아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의무교육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당장 시행하자면 예산이 부족하므로 10년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이제 가까스로 IMF 금융위기를 넘기고 경제를 회복하는 데도 숨가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일제히 반대를 하는 바람에 그 제안은 흐지부지 없던 일로 되고 말았다. 한 장관의 제안에 따랐더라면 지금은 모든 어린이들이 무상으로 국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값싼 임대아파트를 국가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점차 늘려왔더라면 지금 같은 출산율 저하나 인구절벽의 위기는 훨씬 완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떤 이들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이라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한 마당에 어떻게 10년 후, 20년 후까지 예측하며 사느냐고, 그리고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담당자들도 정권이 바뀌면 그 자리에서 밀려나고 이전 정권에서 입안한 장기계획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지거나 뒤집어지는데 어떻게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가령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 같은 중대 사안도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데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허황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현실론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정권 따라 흔들리고 바뀌지 않을 백년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현자들의 원탁회의라 불리는 로마클럽이다. 지난 1968년 전세계의 양심적이고 저명한 인문학자, 과학자, 정치지도자들이 로마에 모여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구, 자원, 환경, 문화 등의 여러 문제에 대한 예측과 대안을 제시한 이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화석 에너지의 고갈에 대비한 탈원전 녹색 에너지 개발,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탄소 방출 억제, 문화다양성 확보 등 후손들을 위한 백년지대계들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대통령 직속으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있지만 수많은 다른 위원회처럼 가끔 정책수립을 위한 제언이나 자문을 하는 정도여서 일반 국민들은 그런 기구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과정에서 이 위원회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존재감도 없다. 앞에서 언급한 교육이나 농업, 에너지 정책, , 대기오염, 기후변화 등 그야말로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토론하여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도 볼 수 없다. 흔해빠진 텔레비전의 토론에서도 이런 백년지대계들은 아예 의제로 포함되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소소한 현안들만을 놓고 여야의 정파적 이해에 매달려 무조건 찬성과 무조건 반대로 치고받는 말싸움만 하고 백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경륜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017년 원자력발전소 증설과 페기 문제를 놓고 국민대표들을 뽑아 집중토론을 한 다음 찬반투표로 정책을 결정한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의 첫 시험은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500명의 국민참여단이 원전 공사 재개를 결정한 결과를 놓고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원전 찬성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서는 중대한 정책결정을 500명이라는 소수의 대표들에게 맡긴 것이 너무 안이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가진 원전 마피아들이 500명을 상대로 찬성 유도 공작을 벌이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아 이들에게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이른바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제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회가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어떻게 내팽개치고 있는지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성적인 국회의원들의 직무 태만과 도덕적 해이에 속이 상하면서도 국가의 주요 정책들을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고도 그건 면적이 작고 국민이 적은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제도라고 섣불리 예단한 것은 아닌가.

아울러 주요 정책은 그 방면의 전문가가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이른바 전문가주의에 너무 세뇌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최근에야 알게 된 각종 비리와 적폐와 사법농단은 바로 그런 전문가들이 저지른 지능범죄였다. 행정수도 이전을 법전문가들한테 맡기니까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하고, 부동산 투기 대책을 강남에 집을 가진 국회의원과 경제관료들에게 맡기니 부동산 보유세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전문지식은 있지만 양심은 없는 전문가보다는 건전한 상식과 양심을 가진 국민이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결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공약을 보고 국민의 대표를 뽑으면 사안마다 국민투표를 할 필요가 없고, 국민투표를 하려면 비용과 행정낭비가 클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남북협상이나 탈원전, 영풍제련소 이전 같은 주요 정책에 대한 텔레비전 토론회를 거쳐 총선이나 대통령선거, 지자체 선거 때 찬반투표로 결정한다면 국회의 소모적인 정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정책선거도 정착되는 삼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는 남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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