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디트푸르트 (Jutta Ditfurth) - 독일녹색당을 떠나 녹색좌파당이라는 작은 둥지를 튼 사람
작성자 팔공산

유타 디트푸르트 (Jutta Ditfurth) - 변질된 독일 녹색당을 떠나 녹색좌파당이라는 작은 둥지를 튼 사람

 

독일 녹색당의 창당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두 번에 걸쳐 녹색당 의장을 지낸 유타 디트푸르트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독일 남부 지역 바이에른 주의 오래된 도시 뷔르츠부르그에서 1951년 태어났다. 본디 이름은 유타 게르타 아름가르드 폰 디트푸르트”(Jutta Gerta Armgard von Ditfurth)이다. 독일어 이름에서 폰(von)이 붙으면 귀족 집안 태생을 의미한다. 디트푸르트 가문은 신성로마 제국에서 전통적인 고위 행정관료들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과학 저널리스트였고, 그의 남자형제 크리스티안은 유명한 역사학자였다. 그녀는 1978년 귀족을 상징하는 을 떼어낸 유타 디트푸르트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신청하였으나 행정청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디트푸르트는 하이델베르그, 함부르그,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사회학, 역사, 정치학, 경제사, 철학을 공부하였고, 이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도 공부를 하였다. 1977년 독일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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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라 켈리와 유타 디트푸르트]

 

디트푸르트는 1970년대에 걸쳐 신좌파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반핵운동에 참여하였다. 1980년에 녹색당 당원이 되었으나, 1980년대 후반 심각한 우경화를 한 녹색당에 비판적 견해를 내었다. 디프푸르트는 녹색당 초기부터 민족주의적 경향으로 나타나는 현실주의자 그룹에 주요한 반대자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1990년 독일 통일을 반대하였고, “다시는 독일이 없다.”라는 구호로 시위를 조직하였다. 독일의 재통일을 반대하는 일부 좌파 그룹들의 생각은 비스마르크부터 히틀러까지 이어진 통일독일이 큰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주체이며, 그러한 독일의 재건을 의미하는 통일독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녹색당은 통일에 대해서 명시적 반대를 하지 않지만, 강력한 반대의견을 두고 통일에 적극적인 행보를 하지 아니하였다.

디트푸르트를 비롯한 원칙주의자들의 당을 주도하는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대신 정당에 대한 국가 지원에 대한 분배와 권력지분에 주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1991년 마침내 녹색당을 떠난다.

탈당 이후에도 그녀는 다양한 출판물에서 녹색당의 변질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녹색당이 목적을 완전히 포기하고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녀는 19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그리스 좌파 정당인 신좌파 흐름”(New Left Current) 소속으로 국제리스트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그 당은 의석을 얻지 못한다. 2000년 그녀는 독일의 소규모 정당인 생태 좌파당창당 주역으로 참여하여 2001년 프랑크푸르트 시의회 선거에서 1석을 얻어 자신이 의원이 되어 활동을 한다. 2007년에는 적군파의 중심인물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의 전기를 출간한다.

 

 

 

 

디프푸르트가 녹색당을 탈당한 후 한 말이다.

녹색당을 떠나면서 급진적 생태주의는 한때 좌파를 구성하였던 거대한 공백을 채워넣어야 한다. 즉 우리 운동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운동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녹색당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너무 나이브하였다. 요시카 피셔 같은 사람이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녹색당을 접수하는 것이 너무 쉬었다.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운동을 건설하기 위하여 끈기있게 준비하여야 한다.”

 

디트푸르트 등 원칙주의자들 상당수가 떠난 독일 녹색당은 우경화의 길에 페달을 밟았고, 1998년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 수립에 이어 1999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외무장관이 된 현실주의 그룹의 지도자 요쉬카 피셔가 집행하면서 비폭력의 원칙을 버리게 된다. 1차 대전 말기에 전쟁의 계속을 고집하는 사회민주당에 실망을 하고 대거 탈당하여 스파르타쿠스단을 만든 로자 룩셈부르그 등의 행동이 독일 사민당의 역사에서 우경화의 큰 고비였다면, 피셔가 주도한 녹색당의 유고 공습 찬성 결정은 녹색당이 근본적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혁명적 성격의 정당, 대안 정당을 완전히 버리는 정점이었다. 한번 길을 벗어나면 점덤 목표지점과는 멀어지는 것이라서 녹색당은 2001년 역시 미국이 주도한 아프카니스탄 침공에도 찬성하게 된다. 막 나가는 자동차에 조금 속도를 줄인 것은 2003년 아메리카가 실행한 중대한 전쟁범죄인 이라크 침략에 녹색당이 동조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요쉬카 피셔는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쟁 반대의 명분으로 삼았다.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가 확인되면 국제연합 결의도 없이 주권 국가를 무력으로 공격해도 되는가?

 

디트푸르트는 일찍 녹색당을 떠났지만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동참은 그나마 남아 있던 녹색당의 열성적인 급진활동가들이 대부분 당을 떠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이끌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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